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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qt

2016년 1월 27일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게 하실 때

최적의 경로가 뻔히 보이는데 더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어차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은 우리 수준의 생각이다. 먼 길로 돌아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 좋자고 그러시는게 아니다.

출애굽의 목적지는 가나안이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네게브 사막을 지나면 된다. 야곱도 이 길로 애굽에 내려왔고 기근을 피해 애굽에 잠시 내려왔던 아브라함도 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 출애굽기 13:18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은 홍해의 광야 길이었다. 이 길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상식적인 길’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지도로 확인하자.

the-egyptian_empire_and_the_hittites

the-egyptian_empire_and_the_hittites <출처 : BIBLE ATLAS, Zaine Ridiling, Access Foundation>

 

위 사진은 애굽이 헷(히타이트) 족속과 전쟁을 하며 이동했던 경로를 보여준다(두 나라는 오래 전 부터 전쟁을 해 왔고 그때 마다 자기네 사는 땅에서 나와 가나안 어디쯤에서 만나 싸웠다).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이 한 눈에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방향은 북쪽 지중해 연안이 아닌 남쪽, 홍해 방향이었다. 이유는 ‘겁을 먹고 돌아가려고 할까봐’였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 출애굽기 13:17

가나안으로 가는 최단 경로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본래 바다를 기반으로 사는 사람들이었고 툭하면 전쟁터가 되는 땅에서 사는 거친 사람들이었다. 남자만 60만 명이 넘는 무리를 자기네 집 안방으로 지나가게 놓아둘리가 없다. 안그래도 애굽과 헷 사이에 끼어서 군대가 지나갈 때 마다 적지 않게 피해를 보았던 전력이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였다. 이들은 노예였다. 복종에 길들여졌고 싸움을 배우지도 못했다.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의 염려는 합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애굽을 나왔으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건 노예로 살아보지 않은 우리 생각이고,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은 틈만 나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애굽 노예로 지내는 동안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할 필요도 없었고 양식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에 길들여진 것이다. 애굽 통치자들은 노예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기술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의 연약함을 아셨고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비상식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머리 속의 네비게이션은 최단거리를 추천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더 멀고, 더 험하다. 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적의 경로를 만드신다. 더디 가는 것 같고, 쓸데없는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 같아도 그게 그렇지가 않다.

a4qt

2015년 11월 5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시니까 당연히 그렇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저항에 부딪힌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부터 줄곧 그래왔다. 예수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정도다.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이시니까 당연히’가 아니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안 이루어지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a4qt

2015년 7월 17일

족장시대 : 갈대아 우르에서 애굽까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살았던 시대를 <족장시대>라 부른다. 창세기를 기준으로 하면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12장에서부터 요셉이 애굽에서 죽어 입관하는 50장 까지다.

 

족장시대를 살펴보는 중요한 키워드는 <언약>이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맺으신 약속이다. 언약은 후손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약속이었으므로 언약을 따라서 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히브리서에 기록되었듯이 족장들은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 가운데 확신하며 기뻐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그의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과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쉽게 믿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번성한다는 말씀이나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종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 항변하기도 했고 여종 하갈에게 낳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고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였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도, 후손의 약속도, 가나안 땅도 이삭의 몫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이삭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났지만 장자의 명분은 아브라함과 본 부인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이삭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이삭은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유한 삶을 살았다. 이삭도 그의 아버지처럼 쉽게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마침내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자 장자의 명분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맏아들 에서는 태생적으로 장자의 명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야곱 보다 두 배 많은 몫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에서가 물려 받을 장자의 명분에는 특별한 유산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았고 이삭에게 이어진 후손의 번성과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될 보이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겼고 결국 가나안을 소유하지도, 후손이 번성하지도 못했다.

 

이삭이 물려주는 장자의 명분은 야곱이 누렸다. 둘째 아들이라 자격이 없었지만 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의 경솔함과 어머니 리브가의 모략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포함한 축복을 받아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야곱은 언약의 계승자가 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성품이 좋아서, 받을만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부족해도, 모자라도 그를 변화시켜서 언약을 이어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셨다. 야곱의 삶이 그러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주셨고 동행과 보호, 번성과 소유의 복을 약속하셨다. 결국 야곱의 후손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가는 과정은 힘들고 아픈 것이었다. 장자의 명분을 획득했지만 정작 그의 인생은 도피와 속임, 불행으로 가득찼다. 야곱의 삶이 평탄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움켜쥔 손을 놓았을 때부터 였다. 벼랑 끝에 서서 자식의 생명마저 잃으면 잃으리로다하며 움켜쥔 손을 놓았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다시 만났고 총리의 아버지가 되어 애굽으로 이주하여 여생을 평안하게 살았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형들에게는 미움을 받았다. 형제들은 철없고 오만한 요셉을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다. 죽이려고 작정했지만 넷째 유다의 만류가 있어서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지만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된다.

요셉의 삶에 일어난 극적인 반전은 후손의 번성과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중동지역 전체를 굶주리게 했던 대기근을 계기로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것이다. 이때부터 사백삼십 년 후 출애굽을 할 때까지 칠십 명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일가족은 성인 남자의 숫자만 세어도 육십만 명이 넘는 민족으로 성장하게 된다.

 

족장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언약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나그네였지만 그에게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났다.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유함을 경험했고 쌍둥이를 낳았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었으며 열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시작을 이루었고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총리가 되어 가족들을 애굽으로 불러 들였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계승과 성취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선명함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성취는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 후 출애굽이 일어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언약은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반드시 이루어진다.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애굽의 고센 땅까지, 그리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 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신의 언약을 이루셨다.

 

설교자의 자리

설교자의 자리는 하나님과 청중 사이가 아니다.
설교자가 하나님과 청중 사이에 자기 자리를 만드는 것은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다.
그런 설교자는 청중이 말씀을 직면할 수록 불안하다.

자신이 아니면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주의 말씀을 배포하는 유일한 공급자 행세를 하다보면
하나님과 청중 사이를 넘어서
주님의 자리를 넘보게 된다.

착각

우리가 하는 일이 ‘거룩’하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하는 일도 이미 거룩하지 않다.
우리 하는 일이 거룩한 것도 우리 때문이 아니다.

장자의 명분(장자 상속권)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맏아들이 누리는 권리를 ‘장자의 명분’ 또는 ‘장자 상속권’이라 부른다.

특별한 권리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장자는 형제들 중에서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맏아들은 평소의 식탁에서도 아버지를 이어 높은 자리에 앉았고 일상 생활에서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 주도적인 위치를 누렸다.

아버지가 죽을 때에는 장자에게 특별한 축복이 주어졌고 유산상속도 다른 형제들 보다 두 배 많은 몫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이어 가문의 대표가 되며 왕족의 경우 당연히 왕위 계승권을 가졌다.

당시의 장자 상속권은 성경에 기록된 족장들뿐만 아니라 바빌론, 앗수르에서도 정착된 제도였다. 이미 발굴된 고대 바빌론, 앗수르의 기록물들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특별한 책임

장자에게 주어진 책임도 크다. 부친이 사망할 경우 어머니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 형제들도 부양 할 책임이 있었다.

 

장자권의 이동

장자의 권리는 심각한 죄를 저지르면 박탈될 수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사례로는 르우벤이 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으나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장자의 명분을 누리지 못했다.

장자의 권리는 매매를 통해서 다른 형제에게 넘겨질 수 있었는데 흔한 일은 아니었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있을 수는 있는 일이지만 손가락질 받는 행위였다(에서의 경우). 첩이나 종의 자식들에게는 먼저 태어났어도 장자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이스마엘의 경우).

  • 출애굽 이후 주어진 율법에서는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 곧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였다.

에서의 장자권과 가나안

에서는 이삭의 맏아들로서 장자의 명분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장자 상속권을 ‘가벼이’ 여겼다.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은 당장의 배고픔 앞의 죽 한그릇 보다 못한 것이었다. 장자의 명분을 팔라는 야곱의 제안을 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이 에서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에서가 물려 받을 장자의 명분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물려 받는 것이었다. 후손에 대한 약속, 그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게서 이삭의 장자권을 가진 아들에게로 이어질 것이었다. 에서는 억울할지 모르지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구입한 것은 절차에 있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은 속여서 받았지만 훗날 장자의 명분을 소유한 아들로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고 에서는 가나안을 떠나 세일산에 정착한다.

 

간략한 이삭의 생애

이삭의 삶에 일어난 주요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도표로 정리하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잘 보인다.

  • 이삭과 리브가도 아이를 쉽게 갖지 못했다. 결혼 후 20년이 지나서 쌍둥이를 낳았다.
  • 아브라함은 죽기 십오 년 전에 쌍둥이 손자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본문  일어난 사건  이삭의 나이
 창세기 23:1  어머니 사라의 죽음   37세
 창세기 25:20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40세
 창세기 25:26  야곱과 에서의 출생   60세
 창세기 25:7  아브라함의 죽음   75세
 창세기 35:28  이삭의 죽음   180세

아브라함의 장례는 이스마엘도 함께 했다. 이삭이 젖 떼던 날 일어난 사건 때문에 쫓겨났으니 70년 넘도록 따로 살았던 이스마엘이다. 70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의 장례. 이스마엘의 감정도 참 복잡했겠다.

늙은 종의 열 두 시간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나홀의 성에 도착해서
이른 새벽 출발하기 까지 채 열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만난 저녁 밥도 먹기 전에 처자를 신부로 결정하고
다음 날 아침 출발.

이삭이 태어나기 까지 이십오 년.
배우자가 결정된 하루 저녁.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이미 예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