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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30일

하나님의 시험, 불이익이 없는 시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무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작정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믿을 수 있는 이유, 신뢰할 만한 근거를 끊임 없이 제공하시면서 믿음의 궤도에 오르기를 기다리셨다.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강압이나 상황에 눌려서,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우러나올 순간을 기다리신다. 그래서 성급하게 몰아가지 않으신다. 어찌 그리 믿음이 없냐고 책망도 하시고 노하실 만한 상황이지만 그러지 않으신다. 책망 보다는 끊임 없이 기회를 주시고 믿음을 드러낼 순간을 만드신다. 그것이 시험이었다.

Figures_The_Israelites_Gather_Manna_in_the_Wilderness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는 이스라엘 백성들. illustrators of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Gerard Hoet (1648–1733) and others, published by P. de Hondt in The Hague in 1728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통과하지 못하면 벌을 받거나 불이익이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만나를 거두러 나간 안식일 아침에도 ‘어찌하여’라고 탄식은 하셨어도 그 때문에 물이 다시 써지거나 만나가 더 이상 내리지 않거나 메추라기 떼가 날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 마침 일어난 아말렉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홍해를 건넌 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과 의식이 있는, 적극적인 선택에 의한 믿음을 가질 기회였다.

 

마시는 문제 : 그들을 시험하실새

광야 길을 걸어 3일 만에 도착한 곳은 ‘마라’였다. 물이 있었지만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 물 맛을 따질 때는 아니었지만 마시면 탈이 나는 물이었다(철분이나 칼슘, 염류가 많이 포함된 물은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빨래를 하거나 생활용수로만 쓰던 우물이 우리 나라에도 흔히 있었다). 사흘 전 까지 찬송을 부르던 입에서는 원망의 말이 나왔고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지자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 출애굽기 15:25

 

단지 마실 물이 생긴 사건이 아니었다. 법도와 율례가 정해졌고 준수하는지 시험하셨다. 마라의 쓴 물은 단지 물 문제를 해결해 주신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결부된 사건이다.

 

먹는 문제 : 내가 시험하리라

유월절 밤에 마련한 음식이 바닥나자 온 회중이 원망하기 시작했다. 물은 오아시스에서 구한다고 해도 식량이 문제였다. 애굽에서 먹던 고기 생각도 나고 떡고 먹고 싶었다. 나오지 말 것을, 배부를 때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이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만나와 메추라기였다. 여기서도 문제만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시험이 함께 있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proved them) / 출애굽기 16:4

 

시험의 내용은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다. 안식일 전 날에 평일의 두 배의 만나가 공급되었고 충분한 식량이 있으니 안식일에는 나오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 출애굽기 16:26-28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동했고 캠프를 세웠다. 오아시스가 흔하지 않은 광야라고는 하지만 유독 물이 없는 장소로 인도하심을 받았다. 하필이면. 백성들은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고 모세는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아침 마다 만나를 거두어 먹고 메추라기를 잡아 먹으면서도 물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마라에서도 물을 마셨지만 그래도 물이 있기는 했다. 지금 이곳은 아예 물이 없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 출애굽기 17:6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옴으로써 소요가 그쳤다. 출애굽기는 이 사건을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했다고 정의한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 출애굽기 17:7

 

하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출애굽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은 알지만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이번에도 우리는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이 광야길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갈 수 있겠는가? 만나는 계속 내릴 것인가? 메추라기는 계속 날아들 것인가?

 

광야에서는 생존을 염려해야 한다. 우물 하나를 두고 생사를 걸고 싸운다. 대추야자 나무 몇 그루의 소유권을 놓고 부족끼리 살육을 벌인다.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벌거벗은 갓난 아이와 다름 없다. 한번도 광야를 겪어보지 않은 세대이다. 이스라엘의 염려는 나름대로 이유가 충분하다.

 

이스라엘 관점에서 보면 원망이 최고다. 원망하면 뭐든 생겼다. 마실 물도 생기고 양식과 고기도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셨지만 원망이 듣기 싫다거나 견딜 수 없어서 채워주신 것이 아니었다. 단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물을 주실 때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실 때도 말씀을 준행하는지 시험하신다.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기 까지. 이렇게 광야 길을 가고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먹고 마시는 일이 최고로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한다.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이 믿음을 갖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그래서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시험은 정당하며 이스라엘에게 유익이었다. 만약 시험이 없었다면, 시험 없이 물도 마시고, 만나도 먹고 고기도 먹었다면 이스라엘이 믿음을 갖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원망하면 주는 신이 될 뿐이다. 예수님도 무리들에게 같은 마음을 갖고 계셨다.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에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단지 먹고 마시는 문제의 해결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우리의 필요가 채워질 때 시험이 함께 있다. 먹고 마시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믿음을 보기 원하실 때, 그때야 말로 신앙이 표현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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