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Canaan

canaan

아브라함의 여정. 첫 출발지 우르(Ur)와 아버지 데라가 죽은 도시 하란(Haran), 최종 목적지 가나안 지역. 가나안은 지중해 연안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요단강 경계 사이에 있다.

창세기부터 사도행전까지 성경의 주요 사건들은 가나안에서 일어났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찾아간 땅이 가나안이다. 에서가 버렸고 야곱이 탐냈던 곳, 애굽에서 죽은 요셉이 자신의 뼈를 묻고 싶어 했던 곳,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목적지.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있었고 분열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있던 곳. 멸망과 귀환 이후 로마에 의해 유대(JUDAEA)로 불렸다가 예루살렘 멸망 이후 팔레스타인이 되는 곳. 가나안이다.

 

명칭의 유래

가나안(Canaan)이라는 명칭은 노아의 손자 가나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 함이 낳은 아들이 가나안이다. 11개의 족속이 가나안의 후손이며 가나안의 자녀들과 이후에 형성된 족속들의 이름은 창세기 10장에서 확인된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 창세기 10:6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여부스 족속아모리 족속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알가 족속신 족속

아르왓 족속스말 족속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 창세기 10:15-20

창세기 10장에 언급된 족속의 이름들은 이후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약속 받을 때에도 언급된다. 창세기 15장에서는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여부스와 아모리를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의 가나안 족속이 기록되어 있다.

함의 계보에 기록된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지역은 시돈에서 시작하여 아비멜렉이 다스리던 그랄 땅, 가사,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하고 있다. 가나안의 후예들 중에서도 아모리 족속이 규모가 꽤 있었기 때문에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가나안지역에서 통용되던 ‘가나안어’와 ‘아모리어’는 매우 유사해서 지방 사투리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강대국들 사이에 놓인 땅

가나안은 전쟁이 잦은 곳이었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때 마다 가나안은 그들의 격전지가 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성경의 헷 족속)을 비롯해서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가 죽은 이후 분열된 왕조들 사이의 전쟁,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국이 애굽과 중동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고 그때 마다 가나안은 강대국들의 격전지가 되거나 이동경로가 되었다. 당연히 전투가 벌어지거나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는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땅 가나안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은 지시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서 떠났고, 그곳에 머물렀다. 백 세에 낳은 이삭 역시 가나안에 머물렀다. 이삭의 장자였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기고 결국 가나안을 떠났지만 대신 야곱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팔려가지만 이후에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되돌아갈 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유골을 반드시 가져가 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

가나안 지역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다. 다신교를 신봉했고 바알, 다곤, 아세라, 아스다롯과 같은 다양한 신들을 섬겼다. 가나안의 우상 신들은 남신과 여신으로 나뉘고 농경사회인 탓에 주로 농사와 생산, 출산과 연관이 있다. 농경 신 바알, 생산의 여신 아세라, 아스다롯이 주된 숭배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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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릿(Ugarit.)에서 출토된 바알 부조.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Height: 142 cm (55.9 in). Width: 50 cm (19.7 in).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바알은 하늘의 남신, 아세라는 땅의 여신으로 두 신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 그 모습을 가리우는 것이 구름이며 그 결과로 비가 내려 땅의 여신이 흡수하면 농작물이 생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나안 종교의 우상숭배 의식에는 종교적인 매춘이 포함되어 있었고 일명 ‘신전창기’, ‘성전 창녀’로 불리우는 여인들이 있었다. 남성이 우상숭배 종교 의식에 참여하면 그들이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의식의 일부이기도 했다.

구약성경의 역사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우상숭배를 책망하는 선지자가 자주 등장한다. 가나안의 우상을 모두 훼파하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화근이었다. 광야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농경 문화를 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 잘 되고, 자식 잘 낳게 해 준다는 가나안의 우상에 빠져버렸다. 왕국 분열 이후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을 주신 것은 그 땅에 가득한 죄악을 없애고 우상숭배 대신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정작 은혜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고 지도자가 되어야 할 왕들이 앞서 우상 숭배에 빠져버렸다. 가나안에서 우상 숭배가 중단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이후였다.

 

가나안의 현재 이름, 팔레스타인(블레셋 사람들의 땅)

가나안에 이스라엘 민족만 살지는 않았다. 가나안 족속들이 사라졌어도 해양민족 블레셋이 해안 지방을 차지하고 이스라엘과 충돌한다. 대표적인 전쟁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전쟁이다. 블레셋에서 유래한 지명이 팔레스타인(Palestine)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처음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로마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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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 식민주 명칭이 표시된 지도. 지명이 아직은 JUDAEA로 되어 있다. 사마리아, 갈릴리와 같이 익숙한 지명들도 보인다. 좌측 하단에 Gaza라는 지명은 현재도 가자지구(Gaza Strip)로 남아 있다.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하나로 여호수아 시대에는 유다지파에 분배된 도시였다.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곳이다.

남유다, 북이스라엘이 모두 멸망한 이후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을 거쳐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처음 로마는 유대인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이 식민주를 유대(JUDAEA)로 불렀다. 그러나 A.D. 70년 유대인들의 저항이 혹독하게 진압되면서 명칭이 Syria Palaestina로 바뀌게 된다. 로마는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이미 찾아볼 수 없는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을 지명으로 삼은 것이다. 로마는 유대인을 흩어버리고 지명을 바꿈으로써 역사에서 지워버리려 했고 아브라함 이래로 그 땅을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이 명칭은 매우 모욕적인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들어보았을 것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쫓겨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된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UN으로 부터 부여받고 이 때 부터 유대인들의 귀환이 추진된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핍박이 일어나면서 더 많은 숫자의 유대인들이 이주하게 되고 1948년 현재의 이스라엘이 건국된다. 물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은 반대했고 이후 거듭되는 전쟁으로 현재의 이스라엘 국경선이 만들어진다. 현재도 가나안 지역은 총성이 멈추지 않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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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중심 도시인 예루살렘 풍경. 감람산(Mount of Olives)바라본 모습이다.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에는 이슬람의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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